여행으로 만나는 부산진성과 조선통신사 (10:30 출발)
역사전공 해설사와 함께
보조자료를 활용한 역사놀이활동
- 3,000원
- 3,000원
여행으로 만나는 부산진성과 조선통신사 (14:00 출발)
·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중심으로 부산진성공원(옛자성대공원)과 영가대 탐방
· 보조자료(사진, 지도, 활동지, 퀴즈)를 활용한 역사놀이활동
· 조선통신사역사관 제공 기념품(여행용 3단 파우치)
준비물 안내
· 간편한 복장과 개인음료 등
취소/변경 및 환불 안내
【취소 수수료】
조선통신사 역사관 입구 → 부산진성공원(금루문(서문) → 왜성흔적 → 진남대 → 천장군기념비 → 최영장군비각 → 진동문(동문)) → 영가대 → 조선통신사 역사관
¶ 시내버스 : 자성대 정차
· 26, 41, 139, 1003, 80, 42
¶ 시내버스 : 부산진시장 정차
· 2, 22, 23, 27, 40, 41, 63, 83, 101, 108, 138, 134
주차장
조선통신사는
한·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
한양에서 에도까지의 행렬에
일본과 조선은 '통신(通信)' 이란 말처럼 신의를 나누었다.
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.
도요토미 히데요시(豊臣秀吉)의 조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, 이 전쟁은 조선을 황폐하게 했다.
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(徳川家康)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하였다.
이후, 도쿠가와(徳川) 막부(幕府)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‘쇼군(将軍) 일대의 의식’으로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1607년부터 1811년까지의 약 200여 년 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하였다.
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,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.
제2회 방문은 교토(京都)의 후시미(伏見)에서, 제12회 방문은 쓰시마(対馬)까지였으나,
그 외에는 모두 에도까지 왕복하였고 제4회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(日光)에도 방문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.
조선통신사는 정사(正使)・부사(副使)・종사관(從事官)의 삼사(三使) 이하, 화원(畵員)・의원(醫院)・역관(譯官)・악사(樂師) 등
총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 사절단이었으며조선의 수도 한양(漢陽)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 에도(江戸)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 4,500km의 여행을 했다.
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.
조선통신사의 선단(船團)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.